서도호와
은은한 빛

세계를 여행하는 예술가,
건물의 아우라에 대해 이야기하다

인터뷰 EMILY KING
사진 LOLA & PANI

Emily King(이하 EK): 직물을 다루는 작업을 할 때 빛을 중요한 요소로 사용하시는데요, 그런 작품을 설치할 때 전시실에 있는 빛을 그대로 수용하나요, 원하는 방식으로 통제하시나요?

서도호(이하 DHS): 정말 좋은 질문이네요. 저는 빛을 바꾸지 않으려고 합니다. 채광창에서 내려오는 자연광이 좋아요. 그렇게 부드럽고 은은하면서 넓게 퍼지는 빛이 직물의 투명함을 아주 근사하게 드러내거든요. 벽에 그런 직물들이 몇 개 걸려 있는 걸 보실 수 있어요.

EK: 실제로 사용하시는 직물인가요? 만져봐도 될까요?

DHS: 그럼요. 녹색은 실크 오간자, 연어색은 폴리에스터예요. 실크는 특별한 날 입는 전통 한복에 많이 쓰는 천이지만 비싼 편이라서 대신 폴리에스터를 쓰기도 합니다.

EK: 합성 섬유는 그 윤기가 실크와 같지는 않죠.

DHS: 실크의 오묘한 재질을 표현하려고 맞춤 제작하긴 했지만, 실크는 인공조명, 특히 환한 조명을 비추면 빛이 반사되면서 꽤 불투명해집니다. 투명함을 잃는 거예요. 기억에 대한 관념을 다루는 제 작업에는 투명함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조명 면에서 폴리에스터가 더 다루기 쉬울 때도 있어요.

EK: 저는 늘 빛이 무언가를 드러내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왔던 터라, 빛이 무언가를 감추기도 한다는 게 직관적으로 들리지 않네요.

DHS: 굉장히 절묘한 균형을 이룹니다. 직물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힘들게 만들지만 지나치게 감추지는 않아요. 공간을 정의하는 데 있어 빛이 큰 역할을 합니다.

EK: 천을 어디서 구하시나요? 일대일 크기의 건물과 공간 모형을 만드시니까 꽤 많이 필요하실 텐데요!

DHS: 한국 섬유회사에서 주문합니다. 원래는 시장에서 샀는데 한복을 입으려고 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이런 천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위해 직물을 생산해줄 회사를 찾았어요. 거기서 대량으로 주문합니다.

EK: 보유하신 천이 많나요?

DHS: 네, 민무늬 흰색천을 여러 롤 가지고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보내서 염색해요.

EK: 색은 어떻게 고르세요?

DHS: 이 녹색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전통 가옥 벽지에 쓰이는 색인데 천장에만 사용해요. 벽은 전부 흰색이죠. 그런 다음에는 방마다 일종의 색상 코드를 부여했어요.

EK: 언제 폴리에스터를 쓰고 언제 실크를 쓰는지에 대한 원칙이 있나요?

DHS: 어린 시절 집 같이 전통적인 한국의 건축공간을 재현할 땐 실크를 쓰고, 다른 공간을 만들 땐 폴리에스터를 써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한옥에는 제 어린 시절만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과 역사가 담겨있거든요. 요즘에는 전통 건물에 사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요.

계단 V, 2008년작. 건물들의 윤곽선을 희미하게 포착한 서도호의 유명한 직물 작업들 중 하나다. 서도호 및 Lehmann Maupin 뉴욕, 홍콩, 서울 제공.

EK: 대부분 사라졌나요?

DHS: 네, 한국 사람들은 서양식 건물을 선호하거든요. 전통 건축물이 돌아오고는 있지만 아직 관심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요. 일종의 사치가 되었기 때문에 직물의 가격도 연관 짓는 거죠.

EK: 한옥 안에는 어떤 빛이 드나요?

DHS: 한옥에는 유리 대신 종이를 사용해요. 아주 따스한 빛이 얇은 화선지를 통해 스며들어서 정말 특별합니다. 저는 한옥의 투과성이 좋아요. 미닫이문과 접문의 조합을 여닫아가면서 빛을 조절할 수 있거든요. 제가 서울에 있을 때 지내는 집은 문이 3중이라서 방을 아주 캄캄하게 만들 수도 있고, 문을 열어둘 수도 있어요. 빛과 함께 소리도 스며드는데, 이런 점 덕분에 자연과 색다르게 교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얇은 종이를 통해 소리가 아주 선명하게 들려서 자연 속에 있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저녁이 되면 밖을 볼 순 없어도 창에 비친 그림자를 볼 수 있어요. 이 그림자는 전통 회화의 주제와도 관련 있죠. 이런 건물에 살다 보면 그런 미술 형태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하게 돼요.

EK: 서울에서 지내는 곳은 부모님 댁인가요? 두 분도 예술을 하시나요?

DHS: 아버지는 한국의 전후 현대 미술가 1세대셔서 전쟁 전과 후 한국 미술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십니다. 아버지 전 세대분들이 남긴 작품에는 보통 일본 식민지배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지만, 아버지는 그 잔재에서 탈피하고자 하세요. 전통적인 화선지와 먹물, 붓을 사용하면서도 아주 간결하고 동시대적인 그림을 그려내세요. 아버지가 어린 시절 저에게 훌륭한 환경을 마련해주셨던 게 이제 전부 제 작업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저는 ‘집이 어디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이제는 가족이 있는 런던에서 안정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작업 면에서는 계속 제가 자랐던 집으로 돌아가게 돼요. 다른 관점과 층위를 보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기억이 그런 거겠죠. 그리고 다음 세대, 제 딸들의 세대는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자기만의 기억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세대만 다른 게 아니라 한국인의 피가 반만 흐르기 때문에, 또 다른 문화적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

EK: 올해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작가님이 만드신 영상을 봤어요. 철거를 앞둔 로빈후드가든(Robin Hood Gardens) 아파트 실내가 나왔죠. 작가님의 다른 작업들과는 사뭇 달라 보였습니다.

DHS: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었어요. 개인 작업을 하면서 방들을 기록할 때 쓰는 기법을 똑같이 사용했어요.

EK: 어떤 방이요?

DHS: 제 가족, 친적, 친구 등 제 인생 속 사람들의 방이요. 영상이 아니라 사진을 찍습니다. 트랙을 따라 카메라를 움직이면서 수천 장씩 찍은 다음 컴퓨터에서 이어 붙여요.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이지만 필름처럼 보이죠.

EK: 그런 방법을 쓰는 이유는요?

DHS: 실내 건축물 사진의 미학이 있거든요. 아주 엄밀하고, 해상도가 높고, 초점이 나간 곳이 없습니다.

EK: 흥미롭네요. 그 영상을 보면서 뭔가 묘하다고 생각했지만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었거든요.

DHS: 아주 뜻깊은 프로젝트였어요. 이제까지 개인적 경험만 다뤄오던 저에게 새로운 영역이 펼쳐진 거죠. 로빈후드가든은 여기서 멀지 않은 런던 동부에 있어서, 어떻게 보면 외딴곳인데도 철거 소식이 곧장 큰 화제로 떠올랐죠. 그리고 긴박했습니다. 저희가 촬영하는 동안 건물이 말 그대로 내려앉고 있어서 두어 달 만에 완성해야 했거든요.

EK: 감정이 많이 북받치셨겠어요.

DHS: 제가 뭘 하고 있는 건지 계속 자문하게 되는 프로젝트였죠. 베니스 오프닝에서 그 영상을 보신 한국 기자 몇 분이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셨어요. 흥미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지극히 런던에 특화된 프로젝트에서 세계적인 현상을 논하는 질문이 나왔으니까요.

EK: 작업실이 정말 멋지네요. 창이 아주 크고, 서향 맞죠? 해질녘이 장관이겠어요.

DHS: 네, 이쪽이 서쪽입니다. 오후에 빛이 아주 강하게 쏟아져서 정말, 정말 아름다워요. 런던에서 이런 빛은 흔치 않은 것 같아요. 뉴욕과 서울은 계절 면에서 아주 비슷합니다. 두 도시 모두 아주 밝고 화창한 빛이 들어요. 서울이 특히 그랬었지만, 이제는 별로 그렇지 않네요.

EK: 런던에서는 남쪽에서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면서 길 한 번 건너는 게 쉽지 않죠.

DHS: 런던에 산 지 8년째지만, 날씨에 적응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어요. 축축한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날씨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도 으슬으슬해요. 뼛속까지 시린 느낌이죠.